미드소마 — 햇빛 아래에서 벌어진 가장 잔인한 제사

이상하게 눈이 부신 공포
미드소마를 처음 봤을 땐 이상했다. 공포 영화인데, 어둡지가 않다. 모든 게 환하게 빛나고, 사람들은 흰옷을 입고, 꽃이 피고, 새가 운다. 그런데 그 안에서 나는 이상하게 불안했다. 너무 평화로운 게 오히려 섬뜩했다. 햇빛이 내리쬐는데도, 그 빛이 따뜻하지가 않다. 영화가 끝날 때쯤엔 ‘밝음도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 나도 한동안 여름만 되면 이 영화가 떠오른다. 햇살 좋은 날에 외출하다가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질 때가 있다. 햇빛이 너무 강하면 그림자가 사라지잖아. 그 순간, 뭔가 나 자신이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게 딱 미드소마 같다. 공포는 어둠이 아니라, 모든 걸 너무 똑똑히 볼 수 있을 때 생긴다.
이별, 불행, 그리고 신앙의 대체물
이 영화의 시작은 참 잔인하다. 주인공 대니는 가족을 잃는다. 그런데 그 ‘잃는 방식’이 너무 현실적이라 숨이 막힌다. 그녀는 애인이 있지만, 사실상 감정적으로는 이미 혼자다. 모든 게 끊어진 상태에서, 이상한 친구들의 초대를 받아 스웨덴의 시골 마을로 가게 된다. 그 마을은 일 년에 한 번, 해가 지지 않는 기간에 축제를 연다. 거기서 모든 게 시작된다. 이 이야기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솔직히 이해가 안 됐다. 왜 대니는 도망치지 않았을까? 왜 그곳에 남았을까? 그런데 다시 보니까, 그건 공포라기보다 어떤 ‘안식’의 형태였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가족을 잃고, 세상에서 혼자 남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품어준다. 울 때 같이 울고, 고통을 함께 느낀다. 이상한데, 따뜻하다. 그게 더 무섭다. 그녀는 결국 자신을 받아주는 공동체 안에서 무너진다. 신앙이 사라진 자리에 ‘집단’이 들어온 것이다. 그건 신의 대체물이었고, 동시에 그녀의 구원이었다.
나는 이걸 보고 오래 생각했다. ‘신을 믿는다는 게 결국 이렇게 되는 걸까?’ 인간은 믿을 대상을 잃으면, 새로 만들어낸다. 그게 사람이든, 제도든, 공동체든. 그런데 그 믿음이 지나치면 신보다 더 위험해진다. 대니는 결국 새로운 신이 된다. 꽃으로 장식된 여왕이 되고, 모두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 장면에서 이상하게 나는 슬펐다. 그녀는 구원받았는데, 동시에 완전히 사라졌다. 그건 신앙이 가진 가장 잔혹한 양면이다.
꽃과 불, 그리고 해방의 얼굴
영화의 마지막 장면. 대니는 모든 걸 본다. 사랑했던 사람은 제물로 바쳐지고, 불길이 타오르고, 사람들은 노래한다. 그녀는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는다. 그 표정이 너무 낯설었다. 마지막에 살짝 미소 짓는 그 얼굴이, 정확히 ‘광기와 해방’의 경계에 서 있다. 그게 왜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졌을까.
그때 나는 예전에 겪었던 이상한 기억이 떠올랐다. 이유 없이 모든 걸 다 버리고 싶었던 시기. 사람들 만나기도 싫고, 대화도 피곤하고, 그냥 조용한 데서 며칠이고 잠만 자고 싶었던 그때. 그런데 이상하게 그 ‘포기’의 순간이 조금은 편안했다. 이 영화의 대니도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모든 걸 잃고,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을 때, 그때서야 진짜 ‘해방’이 온다. 그게 너무 슬픈 해방이라서, 그래서 이 영화는 무섭지 않고, 오히려 눈부시다.
신이 없는 신앙, 그리고 인간의 잔인함
나는 미드소마를 ‘이교도의 이야기’라기보다 ‘신이 사라진 인간의 이야기’로 본다. 거기서 신은 진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제사는 결국 인간들이 만든 신화를 연극처럼 반복하는 행위다. 하지만 그 행위 안에서 그들은 ‘진짜 신’을 느낀다. 그게 무섭다. 인간은 상상을 믿고, 믿음으로 현실을 바꾼다. 그게 오컬트의 본질 아닐까. 이 영화는 신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신 없이도 인간은 얼마든지 신앙을 만들어낸다’는 걸 보여준다. 나는 그게 이 시대랑 너무 닮았다고 느꼈다. 신 대신 알고리즘을 믿고, 사람 대신 숫자를 믿고, 결국 다들 자기만의 작은 제단을 가지고 산다. 누구나 자기만의 미드소마를 품고 있다. 다만 그게 빛 속에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의 여름
이 영화를 보고 난 뒤로, 여름이 조금 달라졌다. 햇살이 너무 밝은 날엔 괜히 불안하다. 기분 좋은데 마음 한켠이 서늘하다. 아마 그건, 밝음이 꼭 행복을 뜻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려서일 거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아무 일도 없는데 이상하게 울고 싶을 때. 그때 나는 대니가 마지막에 웃던 장면을 떠올린다. 그 미소가 그냥 슬퍼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진짜 자유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고, 누구도 용서하지 않으면서, 그냥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 그게 미드소마가 보여주는 가장 잔인한 행복 같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이상한 컬트 영화’라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현실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각자의 제사 속에 살고 있으니까. 누구는 직장을, 누구는 사랑을, 누구는 꿈을 불태우며 매일의 제단을 쌓는다. 그래서 이 영화가 그렇게 오래 남는 것 같다. 공포보다 현실적이고, 잔인하지만 아름답다. 햇빛 속의 악마들, 그리고 웃고 있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