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 신을 오해한 인간들

누가 악마인가, 누가 신인가
곡성을 다시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먹먹하다. 처음 볼 땐 그냥 무서운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부터는 점점 슬퍼진다.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의 ‘의심’이었다. 이 영화는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를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 모호함이 너무 현실 같았다.
경찰 종구(곽도원)는 평범한 아버지다. 밤낮으로 사건을 쫓지만, 늘 지쳐 있다. 그의 마을에 이상한 병이 퍼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이유 없이 미쳐가고, 가족을 공격한다. 모두가 한 사람을 의심한다 — 산속의 일본인(쿠니무라 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카메라로 사람을 찍는다. 시체 곁에서 고기 썰 듯 동물을 다루는 그 장면. 누구라도 무섭지 않겠나. 그런데 영화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진짜 악은 그를 믿지 못하는 인간의 눈 안에 있다.’
의심은 믿음보다 빠르다
종구는 처음엔 미신을 믿지 않는다. 경찰이니까, 모든 걸 증거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딸 효진이 이상한 병에 걸리자 그의 믿음이 무너진다. 그때부터 모든 게 뒤섞인다. 신부도, 무당도, 이웃의 말도 다 믿고 싶고 다 의심스럽다. 그 혼란 속에서 ‘악마’는 자란다. 나는 그걸 보면서 너무 현실 같다고 느꼈다. 우리도 똑같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믿는 사람 찾기’가 아니라 ‘의심할 사람 정하기’다. 곡성은 그걸 잔인하게 보여준다.
무당 일광(황정민)이 등장할 때 영화는 완전히 뒤집힌다. 북소리가 터지고, 닭피가 튀고, 뿔 달린 제물이 흔들린다. 나는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숨을 못 쉬었다. 화면이 요란한데, 그 안의 리듬이 너무 정교했다. 그게 굿인지, 퇴마인지, 살인지 모르겠다. 종교와 주술, 신앙과 공포가 하나로 뒤섞인다. 그리고 그 광란 속에서 ‘누가 진짜 옳은가’라는 질문이 사라진다.
신이 침묵할 때 인간은 굿을 시작한다
나는 일광을 볼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든다. 그는 진짜 무당인가, 아니면 사기꾼인가. 영화는 끝까지 답을 안 준다. 그가 의식을 하던 순간 일본인도 동시에 굿을 한다. 거울처럼 비슷한 장면. 누가 악마를 쫓고, 누가 악마를 부르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 혼란이 너무 리얼하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왜 인간은 스스로 굿을 해야 할까. 아마 신은 너무 멀리 있어서 우리가 대신 의식을 만들어버린 게 아닐까. 신이 침묵할 때 인간은 굿을 시작한다. 곡성의 굿은 신앙의 실패이자 ‘믿음의 시뮬레이션’이다.
종구의 믿음은 너무 늦게 찾아왔다
영화 후반부에 종구는 결국 집으로 달려간다. 딸 효진을 살리기 위해, 일광의 경고도, 수녀의 충고도 다 무시하고. 그때 일본인은 이미 죽었고, 수녀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믿음이 시험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구는 믿지 않는다. 문을 열면 가족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그 문이 지옥의 문이 된다. 그 장면이 정말 잔인했다. 악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인간이 믿음을 오해하도록 놔두었을 뿐이다.
나는 그 장면에서 오래 멈췄다. 사람이 진짜 무너지는 건, 악마가 찾아왔을 때가 아니라 ‘이제 믿을 게 아무것도 없을 때’다. 곡성은 그 절망의 순간을 정확히 찍어낸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얼굴, 그 눈빛 하나로 모든 신앙이 무너진다. 그 얼굴이 악보다 더 무섭다.
일본인, 악마, 그리고 우리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일본인이 악마다, 아니다 신이다, 혹은 악도 선도 아닌 ‘중간자’라고. 근데 나는 이제 그가 무엇인지보다 ‘왜 종구가 그를 그렇게 봤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낯선 존재에게 공포를 투사한다. 모르는 언어, 모르는 얼굴, 모르는 신앙. 그게 악마로 보이기 시작하면, 이미 악마는 우리 안에 있다.
곡성의 진짜 공포는 바로 그 지점이다. 악마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두려움이 커질수록 안으로 스며든다는 것. 신앙이 공포로 바뀌는 그 한순간, 인간은 자신이 만든 지옥 속에 갇힌다.
믿음은 언제나 너무 늦게 온다
곡성의 마지막은 신앙의 종말처럼 느껴진다. 수녀가 말하던 경고, 무당의 굿, 일본인의 침묵, 모든 게 다 연결되어 있었지만 종구는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그는 끝내 “하느님, 제발...”을 외치지만 신은 대답하지 않는다. 신이 침묵했는지, 아니면 이미 인간이 귀를 닫은 건지.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무섭지도, 슬프지도 않았는데 가슴 한쪽이 묘하게 허전했다. 신을 믿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그게 더 무섭다. 아마 곡성은 그런 영화다. 신이 사라진 시대, 남은 건 오해뿐인 인간들의 굿판.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결국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당신은 누굴 믿었습니까?” 곡성은 그 대답을 우리 각자에게 맡겨버린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침묵만 남긴다. 그리고 그게 제일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