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나폴리탄 괴담 — 죽은 자가 돌아온 도시

컬트라쿤 2025. 10. 11. 22:46

나폴리 이미지

서론

지중해의 햇빛 아래 늘 웃음소리가 넘치는 도시, 나폴리. 그러나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죽은 자와 함께 사는 도시’로 불려왔다. 골목마다 세워진 성당의 지하에는 해골이 잠들고, 사람들은 그 해골에게 기도하며 복을 빈다. 이곳에서 죽음은 공포가 아니라 일상의 한 부분이다. 밤이 되면 사람들은 옛 묘지의 이야기를 꺼내며, 돌아온 영혼들의 발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속삭인다. 이 글은 괴담의 도시 나폴리에서, 죽음과 신앙, 그리고 인간의 기억이 만들어낸 독특한 세계를 따라가본다.

뼈의 도시 — 나폴리의 죽음과 공존하는 풍경

나폴리의 역사는 죽음과 함께 시작되었다. 도시 곳곳에는 고대 로마 시대의 카타콤, 즉 지하묘지가 남아 있다. 수백 년 전 전염병과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을 때, 그들의 시신은 도시의 아래층으로 옮겨졌다. 시간이 흐르며 뼈는 도시의 일부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 해골 위에 성당을 짓고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죽은 자는 땅 아래, 산 자는 그 위에서 살아가는 구조 — 이것이 바로 나폴리가 ‘죽은 자의 도시’라 불리는 이유다. 특히 유명한 곳이 ‘폰타넬레 묘지(Cimitero delle Fontanelle)’다. 이곳에는 4만 개가 넘는 해골이 벽과 바닥을 메우고 있다. 놀랍게도 나폴리 시민들은 그 해골에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수호자로 삼았다. 이른바 ‘애도 입양(adozione delle anime)’이라 불리는 풍습이다. 사람들은 무명인의 두개골을 골라 정성스레 닦고, 양초를 켜며 소원을 빈다. 시험 합격, 병의 치유, 사랑의 성취 — 죽은 자는 그들의 수호신이자 조력자가 된다. 이 기묘한 공존의 문화는 가톨릭 신앙과 고대 주술의 혼합에서 비롯되었다.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두지 않고, ‘관계의 지속’으로 받아들이는 세계관. 그 결과 나폴리의 거리는 죽음의 냄새가 아닌, 기억과 연민의 향기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묘지를 찾아가 속삭인다. “도와줘, 나의 해골 성자여.” 그 목소리는 도시의 돌벽 사이로 스며들어, 밤마다 조용히 되돌아온다.

괴담의 언어 — 나폴리가 죽은 자를 이야기하는 방식

나폴리의 괴담은 다른 유럽 도시의 그것과 다르다. 이곳에서 유령은 피 흘리며 복수를 꿈꾸는 존재가 아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돌아온 영혼이 아직 집을 떠나지 못했다”는 식으로 시작한다. 죽은 자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슬픔과 애정이 남은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인간에게 겁을 주기보다는, 그리움 속에서 잠시 길을 잃은 그림자처럼 등장한다. 이러한 괴담의 구조는 나폴리 사람들의 언어와 정서에서 비롯된다. 그들의 말은 언제나 과장되고, 노래하듯 리듬을 가진다. 괴담조차도 이야기꾼의 입을 거치면 한 편의 연극이 된다. 죽은 자를 이야기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은, 그들이 죽음을 ‘끝’이 아니라 ‘대화의 연속’으로 보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사라진 이가 아니라, 여전히 함께 살아 있는 존재다. 그래서 나폴리의 괴담에는 “그는 아직 이 골목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서사적 특징은 나폴리 특유의 공동체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좁은 골목에서 서로의 삶이 얽히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타인의 죽음까지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괴담은 그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밤의 식탁에서, 혹은 성당 앞의 작은 광장에서 사람들은 죽은 자를 이야기하며 다시 웃고, 그 웃음 속에서 죽음은 생으로 녹아든다. 언어학적으로 보면 나폴리의 괴담은 ‘기억의 언어’다. 그것은 망자를 잊지 않기 위한 구술적 장치이며, 시간이 흐르며 하나의 집단적 신앙으로 변했다. 즉, 이 도시는 괴담을 통해 죽음을 말하는 법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 죽음을 초월한 삶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이야기는 곧 제의이며, 이야기꾼은 사제이자 구원자였다.

죽은 자가 돌아온 도시 — 나폴리의 기억과 영혼

나폴리는 죽은 자가 돌아오는 도시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이 도시는 수세기 동안 ‘망자와의 공존’을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여 왔다. 죽은 자는 사라지지 않고, 기억의 형태로 다시 돌아온다. 그들의 이름은 골목의 벽에 새겨지고, 그들의 얼굴은 해골 위에 얹힌 작은 초상화로 남는다. 나폴리 사람들은 매년 ‘죽은 자의 날’이면 묘지를 찾아와 말을 건다. “네가 있었기에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그 인사는 기도이자 대화이며, 일종의 환영이다. 이 도시에선 기억이 곧 영혼이다. 망자를 잊는 것은 또 한 번의 죽음이라 여긴다. 그래서 나폴리의 괴담은 망자를 되살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들은 죽은 자를 이야기하며,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한다. 도시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이 뒤엉킨 골목마다, 괴담은 하나의 ‘기억 장치’로 작동한다. 그 속에서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묻는다. “우리는 정말 다른 세계에 있는 걸까?” 흥미롭게도 나폴리의 괴담에는 유령보다 인간이 더 많이 등장한다. 죽은 자를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산 자이며, 그 두려움 속에는 자신의 유한함을 직면하려는 의식이 숨어 있다. 괴담은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그 경계 너머로 손을 내밀게 만든다. 죽은 자가 돌아오는 것은, 어쩌면 산 자가 먼저 그들을 불렀기 때문이다. 밤이 내리면 나폴리의 바람은 부드럽게 울린다. 돌계단 아래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비어 있는 창문 너머로 초의 불빛이 흔들린다. 그 빛은 두려움이 아니라 기억의 신호다. 나폴리의 괴담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이야기의 또 다른 시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