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묘비에 새겨진 문자는 단순한 추모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의 경계가 죽음의 세계로 확장되는 지점이자, 한 시대의 사회 언어학적 체계를 응축한 텍스트이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에서부터 중세의 라틴어 묘비문, 그리고 근대 이후의 민속적 한글 epitaph까지, 묘비는 인간이 언어로 기억을 지속시키려는 욕망의 산물이었다. 언어학적 관점에서 묘비문은 ‘죽은 자의 말하기(discourse of the dead)’라는 역설적인 담론 형식을 보여준다. 발화 주체는 이미 부재하지만, 그 흔적은 문자라는 형태로 남아 살아 있는 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이러한 관점에서 묘비문은 텍스트, 기호, 그리고 기억이 교차하는 언어학의 경계 지대라 할 수 있다.비문의 기원 — 언어가 무덤에 새겨지기 시작한 순간언어가 무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