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괴담은 언제나 ‘이야기되는 순간’ 살아난다. 하지만 현대의 괴담 중에는, 이야기가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감염’으로 작동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전염형 괴담이다. 이 유형의 공포는 귀신보다 빠르고, 영상보다 강력하다. 그것은 듣는 즉시, 말하는 즉시 퍼져나가며 ‘공유된 공포’라는 심리적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 이 글은 슬렌더맨, 링, 그리고 ‘미스터 치킨맨’ 같은 현대 괴담을 통해 공포가 어떻게 감정·언어·네트워크를 타고 번지는지를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탐구한다.
공포는 감염된다 — 괴담의 전파 구조
전염형 괴담의 핵심은 “믿지 않아도 옮는다”는 전제에 있다. 즉, 이 공포는 신앙이나 미신처럼 ‘믿음’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 대신, 단 한 번의 언급만으로 청자의 마음속에 불안을 주입한다. 이 불안은 다시 타인에게 전달되며, 이야기는 네트워크를 따라 ‘복제’된다. 이런 괴담의 전파 방식은 전염병의 확산과 유사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일본 영화 『링(Ring)』이다. 비디오테이프를 본 사람은 일주일 뒤 죽는다 — 이 단순한 규칙만으로 이야기는 끝없이 복제되고 재생된다. 테이프를 보는 행위는 곧 ‘전염의 참여’가 된다. 청자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 테이프를 찾고, 결국 직접 감염되기를 택한다. 이 모순된 행동은 인간이 공포를 ‘피하지 못하는’ 심리 구조를 보여준다. 현대 괴담의 전염력은 인터넷 시대를 만나 더욱 강화됐다. ‘슬렌더맨(Slender Man)’은 실존하지 않는 존재였지만, 온라인 포럼의 이미지와 서사적 변형을 통해 하나의 실재처럼 굳어졌다. 사람들은 그를 봤다고 말했고, 심지어 그를 위해 살인까지 저질렀다. 이 현상은 공포가 현실을 넘어 사회적 행동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괴담은 단지 이야기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공유된 상상 속 실재, 즉 심리적 감염체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전염의 중심에 언제나 ‘말하기’가 있다는 것이다. 괴담을 전하는 행위 자체가 감염 경로다. “그 이야기를 들었니?”라는 질문은 이미 감염의 시작이다. 괴담은 이렇게 언어적 매개체를 통해 퍼지는 감정의 바이러스로 작동한다. 공포는 말의 형태로 세상에 퍼지고, 그 말을 반복하는 인간이 바로 그 숙주가 된다.
믿음과 불안 — 왜 우리는 전염을 멈추지 못하는가
전염형 괴담은 인간의 본능적인 불안 전달 욕구를 자극한다. 심리학적으로 불안은 ‘공유’를 통해 완화되지만, 괴담의 경우 이 공유가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킨다. 즉, 공포를 말함으로써 안심하려는 시도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며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순환 구조를 만든다. 그래서 전염형 괴담은 한 번 들으면 멈출 수 없는 이야기다. 이 구조는 사회적 동조(social conformity) 와도 깊게 연관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공포의 규칙을 어기지 않기 위해 다른 이에게 그 규칙을 전달한다. “너도 조심해. 그 말을 하면 안 돼.” 이 문장은 경고이자 전염이다. 그 순간 괴담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도덕적 책임의 형태를 띠게 된다. 청자는 스스로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이 불안을 다른 사람에게 넘김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찾는다. 결국 괴담의 전염은 ‘공유된 불안의 릴레이’다. ‘미스터 치킨맨(Mr. Chickenman)’ 같은 인터넷 괴담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괴담은 구체적 실체 없이, 오직 텍스트와 짧은 밈으로만 전파되었다. 그 이름을 언급하면 무언가가 찾아온다는 설정은 내용보다 언급 행위 자체를 공포의 본질로 만든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정교하게 반영한다. 공포는 사건이 아니라 정보의 흐름으로 존재하고, 괴담은 그 흐름 속에서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번식한다. 또한 이런 괴담은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를 통해 유지된다. “말도 안 되지만 혹시 정말이라면?” 이 생각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작은 틈을 만든다. 이 틈이 불안을 낳고, 그 불안이 다시 괴담을 확산시킨다. 결국 전염형 괴담은 믿음과 불신 사이의 모호한 경계 위에서 자라난다. 사람들은 믿지 않으면서도 조심하고, 웃으면서도 한 번쯤 뒤를 돌아본다. 그 ‘반신반의의 감정’이 바로 공포의 생명력이다.
디지털 시대의 공포 — 괴담은 어떻게 바이러스가 되었나
인터넷은 괴담에게 새로운 신체를 주었다. 한때 밤의 입소문으로만 퍼지던 이야기는 이제 클릭 한 번으로 세계를 감염시킨다. 디지털 전염형 괴담은 더 이상 단순한 허구가 아니다. 그것은 알고리즘의 속도, 밈의 반복, 공유 버튼의 손끝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SNS는 괴담을 마치 바이러스처럼 확산시키는 환경이 되었고, 공포는 감정의 전염병으로 진화했다. ‘링’이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전파된 세대였다면, 오늘날의 공포는 링크(URL)를 통해 전염된다. 링크를 클릭하고, 짧은 영상을 보고, 그 아래에 “절대 공유하지 마세요”라는 문장을 발견하는 순간, 괴담은 완성된다. 그 문장은 경고가 아니라 유혹이다. 공유 금지는 공유를 촉진하고, 공포는 ‘전달의 쾌감’을 통해 증폭된다. 이것은 디지털 사회의 감정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공포는 클릭 수를, 클릭은 존재감을 만들어낸다. 괴담은 그렇게 주목경제(attention economy)의 한 축으로 편입된다. 전염형 괴담의 확산은 또한 사회적 불안의 반영이기도 하다. 불안정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통제 불가능한 감정에 매혹된다. 괴담은 그 불안을 설명할 언어를 제공하고, 그 언어를 반복할수록 불안은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이 감염에서 쾌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공포를 나눈다는 것은 곧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주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개인의 감정이지만, 괴담으로 표현될 때 집단적 소속감으로 바뀐다. 이제 괴담은 이야기의 형태를 넘어, 정보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것은 댓글, 영상, 밈, 챌린지, AI 음성으로 복제되며 자기 자신을 전파하는 능동적 존재처럼 행동한다. 전염형 괴담은 더 이상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 그 자체가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시스템이다. 결국 “말하면 옮는다”는 경고는, 오늘날 정보사회 전체에 대한 은유다. 공포는 바이러스처럼, 그리고 데이터처럼 움직인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를 숙주로 삼고, 공유의 욕망을 통해 끊임없이 복제된다. 우리가 괴담을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괴담이 우리를 통해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전염형 괴담은 단지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 불안을 매개로 한 사회적 감염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