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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의식 — 나무가 지닌 집단 기억

컬트라쿤 2025. 10. 23. 09:54

숲의 사진

서론

‘숲은 살아 있다’는 문장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다. 오늘날의 식물생리학과 생태철학은 이 오래된 감각이 과학적 토대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무는 뿌리와 균사, 전기신호와 화학물질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네트워크는 일종의 ‘집단 기억체계’로 작동한다. 동시에 동아시아의 무속은 나무를 ‘신의 거처’로 간주해왔다. 마을의 당산나무, 제단의 신목(神木)은 단순한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시간의 흐름을 매개하는 유기적 존재로 이해되었다. 본 논고는 이 두 세계 — 현대의 생태학과 전통의 무속신앙 — 을 접합하여, ‘나무의 기억’이란 개념을 철학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1. 식물의 전기신호 — 느린 신경계의 존재론

식물에는 뇌가 없다. 그러나 신경과 유사한 전기적 통신망이 존재한다. 식물생리학자 스테파노 만쿠소(Stefano Mancuso)는 이를 ‘식물 신경학(plant neurobiology)’이라 부른다. 그는 나무가 전기신호를 통해 손상 부위의 정보를 다른 가지로 전달하고, 이웃 나무와도 화학적 신호를 교환한다고 주장했다. 이 신호는 동물의 신경전달보다 훨씬 느리지만, 패턴의 복잡성과 반응의 정교함 면에서는 놀랍다. 예를 들어, 아카시아 나무는 초식동물의 침입을 감지하면 몇 분 내로 인근 나무에게 ‘탄닌 합성’을 유도하는 화학 신호를 보낸다. 이는 일종의 경보 시스템이며, 그 반응은 마치 신경계의 집단적 반사(reflex)처럼 작동한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이는 ‘주체 없는 지성’의 형태다. 개별 나무가 아닌 숲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기능하며, 그 내부의 전기적 교류는 ‘분산된 의식’ 혹은 ‘비인간적 사고(non-human cognition)’로 해석될 수 있다. 인간의 뇌가 뉴런의 네트워크라면, 숲의 뇌는 뿌리와 균사, 전류와 진동으로 구성된 것이다.

2. 무속의 나무신앙 — 집단 기억의 문화적 기호

동아시아의 무속은 이러한 ‘연결된 숲의 의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왔다. 마을 어귀의 당산나무, 샤먼이 제의 중 말을 건네는 신목은 모두 ‘기억을 품은 존재’로 여겨졌다. 무속에서 나무는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라, 인간 공동체의 역사와 감정이 축적된 기억매체다. 당산제에서 나무에 천(天)의 기호를 새기고, 이름 없는 조상신의 혼을 거기서 불러내는 행위는 일종의 정보 복원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나무는 마을의 기억을 보존하고, 인간은 그 기억을 의례로 재생산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전통이 현대의 생태학적 네트워크 이론과 놀라운 평행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월드 우드 웹(World Wood Web)’이라 불리는 미세균사 네트워크는, 실제로 숲의 기억과 자원 흐름을 조절한다. 무속이 상징으로 표현했던 ‘나무의 의식’은 오늘날 과학이 ‘공유된 생태 인식(shared ecological cognition)’이라는 개념으로 다시 발견하고 있는 셈이다.

3. 생태철학으로서의 기억 — 숲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무의 기억’을 철학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의식의 정의를 인간 중심에서 해방시키는 일이다.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생태학에 따르면, 존재란 항상 ‘지각의 장(field of perception)’ 속에서 발생한다. 숲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인식 장이며, 인간의 언어가 닿기 이전의 감각적 사고가 그 안에서 일어난다. 이때 기억은 저장된 데이터가 아니라, 관계의 지속으로 이해된다. 나무는 특정 사건을 ‘저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건의 흔적이 뿌리와 균사, 전기적 흐름을 통해 숲 전체에 확산되어 잔존한다. 즉, 기억은 공간적이다. 숲의 집단 기억은 시간의 연속이 아니라, 관계의 동시성으로 존재한다. 무속적 사유에서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작동한다. 신목은 ‘개별 신령의 거처’가 아니라, 공동체의 영적 네트워크의 일부다. 무당이 나무에 제를 올릴 때, 그는 한 존재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생태계의 기억을 불러낸다. 따라서 숲의 의식이란 개인적 의식의 집합이 아니라, 상호 연결된 생명들의 공명이다.

결론 — 인간 이후의 의식으로

숲의 의식은 인간의 사고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것은 언어 이전의 언어, 논리 이전의 지성이다. 나무는 말을 하지 않지만, 파동과 전류, 화학적 리듬으로 사고한다. 무속은 이 침묵의 언어를 신화로 번역했고, 과학은 그것을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둘을 다시 연결해야 한다. 생태철학의 과제는 자연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의 일부로 자신을 되돌리는 일이다. 인간은 숲 밖의 관찰자가 아니라, 숲의 문법 속에 포함된 문장이다. 숲은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생태적 주체’로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