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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과 작두 — 신을 모시는 도구의 비밀

컬트라쿤 2025. 10. 10. 17:33

칼의 사진

서론

여느 취재보다 공기가 묘했다. 서울 외곽의 작은 굿당, 대문 앞엔 돼지머리와 막걸리, 그리고 붉은 천이 걸려 있었다. 안쪽에서는 북이 둥둥 울리고, 누군가 외쳤다. “장군님, 어서 자리 받아라! 이 몸이 받들겠나이다!” 굿판의 중심엔 보살님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단호했고, 손끝엔 떨림이 없었다. 작두의 날은 번쩍였고, 그 위로 맨발이 올랐다. 이번 취재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왜 그들은 다치지 않는가?’ 그러나 곧 깨달았다. 이건 상처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방식이었다.

신의 자리, 인간의 도구 — 작두의 기원과 역할

작두는 본래 볏짚을 자르는 농기구였다. 그러나 무속의 세계에서 그것은 ‘귀신을 베고, 악귀를 끊는 신의 자리’로 바뀌었다. 의식이 시작되자 북소리가 높아지고, 보살님이 붉은 비단을 들었다. “장군님, 오셨나이까? 이 몸이 받들겠나이다! 자리 받으시라, 어서 오시라!” 그 목소리는 명령이자 간청이었다. 곧 몸이 떨리고, 눈빛이 변했다. 보살님은 작두 위로 올랐다. 철날은 분명 날카로웠지만, 발끝은 미동조차 없었다. “이건 내 발이 아니오. 장군님이 서신 것이오.” 주변의 북소리가 멎자, 작두 위의 그녀는 한참을 미동 없이 서 있었다. 과학자들은 날의 각도와 체중 분산을 이야기하지만, 그 순간을 눈앞에서 보면 설명이 무의미해진다. 신의 ‘좌정(坐定)’이라 불리는 그 상태는, 인간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집중이었다.

굿판의 장비들 — 방울, 부채, 신칼의 의미

보살님이 흔드는 방울에서 청동음이 터졌다. “장군님, 소리 받으소서!” 방울은 신을 부르는 신호다. 금속의 울림은 잡귀를 밀어내고, 부채는 신의 바람을 불러들인다. 부채 끝의 문양에는 봉황과 용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하늘 길이에요. 부채를 휘두르면 신이 오시지요.” 신칼은 작두보다 작지만, 그 기세는 더 날카롭다. 그녀는 신칼을 들어 외쳤다. “귀신은 나가라! 장군님이 베시니라!” 방울·부채·신칼은 각각 부름·응답·단절의 상징이다. 그 세 소리가 겹칠 때 굿판은 절정에 오른다. 의식이 끝난 뒤, 보살님은 장비를 정화하며 향을 피웠다. “이건 신의 자리라. 함부로 손 대면 탈이 나.” 그녀의 말투에는 농담이 없었다. 모든 도구에는 신의 숨결이 깃들어 있었다.

작두의 진실 — 믿음이 만든 현실

카메라로 그녀의 발끝을 확대해 봤다. 칼날은 번쩍였고, 발가락은 움찔도 하지 않았다. “장군님, 이 몸이 감히 받듭니다!” 그녀의 눈은 닫혔지만, 입은 계속 움직였다. “오셨나이까, 장군님. 자리를 받으소서.” 이 장면을 본 전문가들은 ‘트랜스 상태’라고 설명한다. 극도의 몰입으로 통증이 사라지는 현상. 그러나 현장에서는 단순한 심리 현상으로 보기 어려웠다. 그녀는 마치 신과 맞붙은 사람 같았다. 신이 내리는 순간, 인간의 공포와 신의 권위가 뒤섞인다. 굿이 끝나자 작두의 날에는 먼지만 남았다. 상처도 피도 없었다. 보살님은 한숨을 내쉬며 작두에 손을 얹었다. “장군님 가셨다. 오늘은 이 몸이 잘 버텼네.” 나는 그 순간, 이 의식이 단지 믿음이 아니라 ‘관계’라는 걸 깨달았다. 신을 모신다는 건, 믿는 게 아니라 감당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