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숲은 살아 있다’는 문장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다. 오늘날의 식물생리학과 생태철학은 이 오래된 감각이 과학적 토대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무는 뿌리와 균사, 전기신호와 화학물질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네트워크는 일종의 ‘집단 기억체계’로 작동한다. 동시에 동아시아의 무속은 나무를 ‘신의 거처’로 간주해왔다. 마을의 당산나무, 제단의 신목(神木)은 단순한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시간의 흐름을 매개하는 유기적 존재로 이해되었다. 본 논고는 이 두 세계 — 현대의 생태학과 전통의 무속신앙 — 을 접합하여, ‘나무의 기억’이란 개념을 철학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1. 식물의 전기신호 — 느린 신경계의 존재론식물에는 뇌가 없다. 그러나 신경과 유사한 전기적 통신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