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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언어 — 지질과 신의 경계

서론돌은 인간 문명의 가장 오래된 문자였다. 금속 이전의 시대, 인간은 말을 새길 수 없었기에 돌을 세웠다. 그 돌은 기호 이전의 기호, 언어 이전의 언어였다. 고대의 거석문화, 즉 메갈리스(Megalith)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자연의 언어를 해석하려는 시도’였다. 지질학적으로 돌은 시간의 압축체다. 각 층은 수백만 년의 지구적 사건을 기록하고, 그 내부의 결정 구조는 중력과 온도의 질서를 반영한다. 그러나 고대인은 돌을 단순한 물질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 안에서 ‘신의 질서’를 읽었다. 따라서 돌기둥과 석비, 원형 석조 구조물은 신학과 지질이 만나는 경계의 산물이었다. 이 글은 돌의 형상 속에 내재한 기하학적 사고와 종교적 감각의 기원을 탐구한다.1. 돌의 직립 — 인간과 지구의 첫 대화거석..

숲의 의식 — 나무가 지닌 집단 기억

서론‘숲은 살아 있다’는 문장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다. 오늘날의 식물생리학과 생태철학은 이 오래된 감각이 과학적 토대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무는 뿌리와 균사, 전기신호와 화학물질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네트워크는 일종의 ‘집단 기억체계’로 작동한다. 동시에 동아시아의 무속은 나무를 ‘신의 거처’로 간주해왔다. 마을의 당산나무, 제단의 신목(神木)은 단순한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시간의 흐름을 매개하는 유기적 존재로 이해되었다. 본 논고는 이 두 세계 — 현대의 생태학과 전통의 무속신앙 — 을 접합하여, ‘나무의 기억’이란 개념을 철학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1. 식물의 전기신호 — 느린 신경계의 존재론식물에는 뇌가 없다. 그러나 신경과 유사한 전기적 통신망..

봉인과 개방 — 인장의 마법과 통제의 철학

서론인장은 단순한 도장이 아니다. 그것은 권위의 표식이자, 세계를 통제하려는 인간의 오래된 욕망의 기호다. 오컬트의 세계에서 인장(sigillum)은 ‘봉인과 개방’을 동시에 의미한다. 어떤 인장은 악령의 출입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인장은 신성한 존재를 불러내기 위해 그려졌다. 형태는 단순한 기호 같지만, 그 구조 속에는 ‘세계의 질서’를 응축한 수학과 상징이 숨어 있다. 라틴어 sigillum 은 “작은 표식”을 뜻하지만, 그것이 찍히는 순간 그 표식은 ‘현실을 고정하는 힘’을 갖는다. 인장은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시각화한 문장(紋章)이다. 봉인은 보호를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닫힘’의 행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장은 언제나 통제와 해방의 경계에 서 있다.인장의 기원 — 신과 인간 사..

카테고리 없음 2025.10.22